영화_일상 소설 / / 2023. 1. 23. 02:05

그린 파파야 향기, 줄거리 및 영화 배경

마니아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 그린파파야 향기입니다. 달콤하고 맛있는 노란 파파야가 아닌 생존을 위해 매일 반찬거리로 사용되는 그린 파파야가 주인공 무이와 어찌 연을 맺는지 간단히 소개해봅니다.  

영화 제작 출연 인물 이름
영화 제작 관련 정보

줄거리_신을 닮은 여자

무성 영화처럼 잔잔하게 시작되는 단아한 영화였습니다. 동시대 히트작으로 남은 영화 `람보`와는 모든 면에서 반대의 길을 걸었지만, 분명 많은 관객을 감동시켰고 여운을 남길 줄 아는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무한한 감성의 여백. 아마도 이것이 영화로 하여금 명품적 초월 가치를 가지게 한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누군가는 그저 틀에 찍혀 나오는 붕어빵 로맨스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대하는 지고지순한 자세를 눈여겨보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처음 접했던 시기는 제 개인적론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우울한 사춘기 시절이었습니다. 명절 기간 친척들의 대화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제 출생의 배경이 오랜 시간 저를 회색빛 담장 안에 가둬두고 곪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둘째 오빠의 부재가 주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그저 계획에도 없던 제가 태어났다 말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말입니다. 영화 속 장면 중 주인공 무이를 멍하니 바라보는 여주인의 눈빛이 기억납니다. 사실 여주인은 무이가 오기 몇 해전 갑작스럽게 병으로 딸을 떠나보낸 상태였는데 그 딸과 같은 나이대에 무이가 여종으로 들어오자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죽은 딸을 생각했었던 겁니다. 아련한 감정을 말없는 눈빛으로 표현하던 여주인의 얼굴이 제 어머니의 얼굴과 겹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표현할 수 없는 어지러운 감정이 아직 너무 어렸던 제 가슴에 그렇게 한참을 나부꼈습니다. 그리고 다시 흘러가는 영상 속의 집안의 가장이 나타납니다. 마치 집에 방문한 객인양 매일 멀끔하게 차려입고 아내가 챙겨주는 끼니를 당연시 받아먹는 그는 그렇게 매일 악기만 만지작거리며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일과를 끝내고 돌아온 아내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는 못 할망정 집안일을 상의하려 조분 조분 말을 건네는 아내에도 알아서 하라는 차가운 응대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주인은 내 어머니가 그러했듯  우주의 태양처럼 굳건히 중심에 서서 변함없이 장사를 했고, 말썽쟁이 두 아들들을 알뜰히 보살폈습니다. 아마도 어린 무이는 이런 여주인의 단단고 흔들림 없는 따스함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배워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낯선 도시 한 귀퉁이에 여린 뿌리 한가닥을 내린 무이는 초록빛 가득한  베트남 열기 속에서 매일 새벽 일어나 작은 몸을 구겨 불씨를 일으키고, 몇 번이고 무릎을 꿇어 바닥에 걸레질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그녀의 작은 손엔 틈틈이 물이 가득 담겨 목말라하는 주위의 작은 풀꽃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초반부 청량음료와도 같았던 꼬마 악당. 막내아들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꿈틀대는 도마뱀을 장대 끝에 걸어 휘휘 돌리며 무이를 겁주는 장난꾸러기는 무이가 널어놓은 빨래를 바닥에 패대기를 치거나 공들여 닦아 놓은 항아리에 오줌을 싸버리는 일명 뺑덕어멈 친아들 같은 짓을 일삼습니다. 조막만 한 그 머리에 꿀밤이라도 한대 먹이고 싶지만 방귀 쏘기를 하며 휘리릭 도망치는 아이의 귀여운 뒷모습을 볼 때면 관객들은 분명  거듭 용서를 했을꺼라 믿습니다. 그리고 설마 어른이 되어 무이랑 연결되는 건 아닌지 은근 걱정했던 정서 불안의 둘째 아들도 생각납니다. 고백컨데 당시 어린 저의 감정 상태와 꽤 유사했던 그의 모습을 보며 내심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촛농으로 지나가는 개미를 잡아 죽이는 모습을 보며 저는 혼자 생뚱맞게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뭐랄까. 설명할 순 없지만 너무 이해가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때 오은영 박사님 같은 분이 계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 생각도 해봤습니다. 가족이 주는 사랑에 대한 불신과 무엇도 바래선 안된다는 부채 의식에 사로잡혔던 소녀와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의 야반도주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평온한 척 생활 해야하는 둘째 아들은 분명 다르겠지만 같은 선상의 혼란이었을거라 추측해 봅니다. 식당 뒤뜰엔 달콤한 노란 파파야가 되기까지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 그린 파파야가 식모 할머니 손에 덩굴 체 잘려 끌려 내려옵니다. 그 또래가 받아야할 마땅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그날 그날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며 성장하는 무이를 닮았습니다.    

 

노란 파파야가 된 무이

무이는 오늘도 제 팔뚝보다 더 굵은 파파야 한 줄기를 따서 물에 씻고 길쭉하게 배를 갈랐습니다. 하얀 진액으로 범벅진 파파야 씨알들을 알알이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즐거워하는 소녀의 미소가 너무나 맑고 예뻐보입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아리따운 아가씨가 된 무이는 여전히 파파야의 씨앗에 촉감을 즐기고 있습니다. 오늘은 자신 못지않게 부지런한 주방 개미 친구에게 작은 밥알을 선물하는 여유도 부려봅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숲 속에 바람이 불어 나부끼기 시작합니다. 큰 아들 친구인 작곡가 쿠엔이 집에 놀러 온 것입니다. 첫눈에 호감을 느낀 어린 무이는 동그란 눈을 조심히 응시하며 그를 쳐다봅니다. 이제까지 그녀를 따라다니며 빨래하고 바닥 청소하느라 지쳐 있던 관객들은 순간 그녀의 감정에 동요되어 역시나 그의 멋진 얼굴을 몇 번이고 함께 곁눈질했을꺼라 생각됩니다. 무이는 그에게 잘 보이려 딱 한 벌 있는 예쁜 옷을 얼른 꺼내 입고 음식을 날랐었는데 그런 무이를 보며 "너무 티 나잖아." 하며 얼굴을 붉혔던 어린 제 모습도 생각납니다. 아마도 그녀의 운명을 지켜보던 신도 관객들만큼이나 그녀의 온순함을 사랑했나 봅니다. 그녀의 손을 잡고 평탄한 꽃밭으로 향하는 영상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성장한 둘째 아들은 큰형을 대신해 집안의 가업을 물려받습니다. 그리고 어쩜 분노의 대상이었을 그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아버지가 남긴 악기를 아버지처럼 만지작거리며 하루를 허비하는 무관심한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힘이 없는 그는 그의 아내가 쌀이 축난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십 년을 일한 무이를 쿠엔 집 식모로 쫓아버릴 때도 아무말하지 않습니다. 어느덧 할머니가 된 여주인은 무이를 따로 부릅니다. `너를 내 딸로 생각했었다`며 준비했던 혼례복과 고가의 장신구를 며느리 몰래 무이에게 건네는 장면을 보며 무이가 은근 복이 참 많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관객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짝사랑하던 쿠엔 집에서 생활을 시작한 무이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녀의 부지런함은 어딜가나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같이 집안 곳곳을 청소했고 그의 작곡에 방해 될까 조용히 지척에서 그의 일상을 보살핍니다. 버릇없는 그의 약혼자가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천시하며 그의 손을 잡고 뛰쳐 나갈 때에도  음식을 거둬들일 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어느 가을 저녁 날이 어두워지는 줄 모르고 작곡에 몰입 한 그는 무이의 조용한 발걸음에 이어 방안 이곳 저곳에 켜지는 따뜻한 조명 불빛 아래 등장합니다. 그의 몸이 상할까 바로 창문을 닫고 방 안의 온도를 조절하는 그녀는 손수 닦아낸 바닥의 청결을 믿는 듯 하얗고 작은 맨발을 드러낸 채 어떤 소리도 없이 그의 주변을 거닐며  모든 것을 정리합니다. 그녀가 만들어 놓은 공간은 산소처럼 어떤 자극도 없지만 따뜻한 그녀의 심성에서 발현되는 편안함은 분명 그 역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오선지에 그려 넣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황스러워합니다.  여느때처럼 불쑥 집에 놀러 온 약혼자는 이를 발견하고 그를 호되게 추궁하기 시작합니다. 거짓말 못하는 그는 감정을 솔직히 밝혔고 이에 약혼자는 속칭 깽판이라는 것을 쳐 버리고 떠나버립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로 인해 쿠엔은 스스로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고 무이에게 다가서기 시작합니다. 막상 다가오는 그를 두려워 하면서도 용기내 받아 들이는 무이는 점차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그린 파파야 처럼  성숙의 경지에 올라섭니다.   

 

제작 배경

트란 안 훙 감독은 베트남계 프랑스인입니다.  정확히는 베트남 다낭 출신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 정착한 이민 2세입니다. 그는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를 통해 그 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영화상, 세자르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995년 그는 두 번째 장편 영화 `씨클로`로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감독은 영화 기획 당시 베트남 현지촬영을 고려했으나 베트남 정부가 허락하지 않아 프랑스의 한 세트장에서 촬영했다고 고백했는데 사실 그 시대는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패한 미국이 패권을 잡고 지구 평화 보완관을 자처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약점이란게 있었습니다. 바로 베트남 전쟁의 패배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상영한 모든 영화 속 악당이 거진 특정 국가인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이게 가만있었을까요. 하지만 감독은 보이지 않는 이러한 양국의 총성 속에서 고요히 나룻배를 저으며 풋내 터지는 초록 파파야를 가득 담아 세상 내놓았습니다.  

 

베트남 전통 사회 구조

중국 유학 당시 같은 반에서 수학하던 베트남 학생이 있었습니다. 유난히 동그란 얼굴과 까만 머리결을 가졌던 그는 평소 매우 성실한 자세로 학업에 임했고 그 해 최우수 장학금을 받으며 교수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었습니다. 간간히 그와 나눴던 대화 속에서 저는 베트남에 있는 그의 가족들의 생활도 살짝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사업점을 두 개나 경영하고 계셔."

"아버지는?"

"우리 아빠?  글쎄 최근에 기타 배우신다고 그러던데?"

"일 안하셔?"

"우리 아빠는 일 해본 적이 없어. 엄마가 버는데 굳이 일할 필요가 있나?"

 

개인의 가족사라 치부하기엔 뭔가 너무나 익숙한 영상이 머릿속에 펼쳐졌습니다. 좀 더 자료를 찾아본 결과 베트남 역사 근간에 존재하는 `모계` 문화를 알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기후와 풍부한 물을 보유한 베트남은 년간 농업 생산량이 어마 어마한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벼농사의 기본인 모내기의 개념이 우리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자생(때가 되면 볍씨를 뿌리면 되는) 개념이었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심지어 일 년 3 모작입니다. 맹수에게 노출된 위험 지역도 거의 없었고, 겨울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의 동장군과는 비교가 되지 그저 약간 추운 시즌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강한 남성의 힘이 필요치 않는 환경이 대부분인 국가입니다. 그렇다면 가정 경제의 주축은 누구에게 흘러가게 될까요? 아이를 낳고 기르며 돈을 거머쥔 여자에게 주어졌을 겁니다. 야반도주했던 여주인의 남편과 친구의 아버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무능력의 대명사가 아닌 그저 환경이 만들어낸 인물들이었습니다.  어린 제 마음 귀퉁이에 심어졌던 파파야 씨앗이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습니다. `고정관념이 있었구나` 가치관을 한 겹 탈피한 저는 그 후 누구보다도 그를 비롯한 많은 타국의 동기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국제적으로 우수한 능력을 인정받았던 베트남 동기는 자신에게 벽을 두지 않는 제게 자신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함께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고 저는 인생의 많은 기회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갑작스런 일본 출장으로 마지막 날까지 일 만하다 퇴근한 적이 있습니다. 막히는 퇴근길 눈 오는 동경 거리를 보자 왠지 억울한 마음이 내려 무작정 내려 호텔까지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한 코너샵 구석에 걸쳐진 여름 속 그녀와 문뜩 다시 재회하고 맙니다. 여전히 활짝 웃지 않는 그녀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바라보며 그녀가 나에게 준 작은 개화의 기회에 전율했습니다. 그녀가 민망할까 얼른 먼저 웃어주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땐 똑같은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저만 겨울까지 와 버린 것 같아 살짝 마음이 슬펐습니다. 혹 지금 당신의 마음이 어지러우신가요?  조용하고 욕심 없는 한 소녀의 일상이 담긴  초록빛 그린 파파야를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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